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늙어가는 아내에게

sumkyul 2010. 3. 1. 11:26

 
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늙어가는 아내에게 / 황지우

  

        내가 말했잖아

        정말, 정말, 사랑하는, 사랑하는, 사람들.

        사랑하는 사람들은,

        너, 나 사랑해?

        묻질 않어

        그냥 그래

        그냥 살어

        그냥 서로를 사는게야

        (......)

        생각 나?

        (......)

 

 

         .........내가 많이 아프던 날

        그대가 와서, 참으로 하기 힘든, 그러나 속에서는

        몇 날 밤을 잠 못자고 단련시켰던 뜨거운 말:

        저도 형과 같이 그 병에 걸리고 싶어요

 

        그대의 그 말은 에탐부톨과 스트렙토마이신을 한 알 한 알

        들어내고 적갈색의 빈 병을 환하게 했었지

        아, 그곳은 비어있는 만큼 그대 마음이었지

        너무나 벅차 그 말을 사용할 수 조차 없게 하는 그 사랑은

        아픔을 낫게 하기보다는, 정신없이,

        아픔을 함께 앓고 싶어 하는 것임을

        한밤, 약병을 쥐고 울어버린 나는 알았지

        그래서, 그래서, 내가 살아나야 할 이유가 된 그대는 차츰

        내가 살아갈 미래와 교대되었고

 

        이제는 세월이라고 불러도 될 기간을 우리는 함께 통과했다

        살았다는 말이 온갖 경력의 주름을 늘리는 일이듯

        세월은 넥타이를 여며주는 그대 손끝에 역력하다

        이제 내가 할 일은 아침 머리맡에 떨어진 그대 머리카락을

        침 묻힌 손으로 짚어내는 일이 아니라

        그대와 더불어,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이리라